2026. 1. 28. 13:44ㆍ아티클 | Article/Issue3. 도시 계획 이슈
도시주거환경
한국전쟁 이후 진행된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난개발과 그에 따른 노후 주거지가 광범위하게 형성됨에 따라, 이를 정비하기 위한 도시 및 주거환경 개선 노력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 내 노후 불량주택이 산재해 있어 열악한 주거환경과 그에 따른 거주민의 삶의 질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정비사업(재개발 및 재건축)이 본격화되었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과 「도시재개발법」은 대규모 주거환경 정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초기 법령으로 기능하였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 기능 회복을 아우르기 위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제정되면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절차, 이해관계 조정, 지원 방식 등이 체계화되었다. 더 나아가 2010년대 이후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과 같이 기존의 철거 중심 대규모 정비사업에서 주민 삶의 질 개선 및 지역 공동체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법 개정 및 정책 보완됨과 동시에 소규모 주택정비에 대한 방향성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비사업은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의 질을 향상시킨 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지만, 동시에 개발 방식에 대한 사회적 갈등, 지역 불균형, 주택가격 상승과 같은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존의 효율성 중심의 정비사업 방식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며,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대규모 정비사업은 주거지의 물리적 환경개선과 더불어 기반 시설 확충을 통해 거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순기능을 가진다. 현대적인 주거구조와 연결성 높은 교통체계, 다양한 편의시설이 결합된 주거단지 조성은 도시의 경관과 생활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역기능을 수반하고 있다. 첫째, 수도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비사업은 균형적인 수요·공급을 위해 높은 용적률을 허용하면서 추가적인 공급량을 창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택은 외부에서 수요자를 찾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구와 자원의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되어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난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둘째, 대규모 아파트단지 내 공급되는 피트니스시설, 문화취미시설, 교육돌봄시설, 생활여가시설 등 다양한 커뮤니티시설은 주민들의 편의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과도한 시설 공급은 결국 사업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분양가 상승 및 지역 전체 주택가격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셋째, 대규모 단지는 지역의 랜드마크로 기능하며, 상징성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내세워 소위지역 내 “대장아파트”로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 내 또는 인근 지역 주민 간 사회적 위화감뿐만 아니라 주거 문화의 계층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대규모 정비사업은 원론적 측면에서 보면 수요에 대응하는 공급을 가능하게 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어 비용 절감이라는 다중적 효과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명분 아래 대규모 사업방식이 지속되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은 주거의 실질적 사용가치 보다 자산으로서의 기대가치가 우선시되는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
이로 인해 주택시장은 실수요자 중심이 아닌 투기 및 투자수요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주거환경 개선에 따른 실수요자 혜택이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 정비사업으로 인한 주택가격의 전반적 상승은 그 이익이 소수에게 집중된 반면, 비용은 다수에게 전가되는 불균형적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국토의 균형개발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수도권 집중을 유발하는 정책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문제를 효율성과 주택공급의 필요성이라는 명분 아래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까?
도시의 미래는 단순한 외형적 변화나 현대화에 그쳐서는 안 되며, 삶의 질 향상과 지역 공동체의 회복, 나아가 국토의 균형적이고 지속가능한(sustainable) 발전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도시주거환경 개선의 관점에서 대규모 정비사업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부정적 외부효과를 간과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따라서 기대 가치가 주택시장을 지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사용 가치가 중심이 되는 주택시장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대규모 중심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의 질과 공동체적 가치의 회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특히 기존 도시개발 접근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람 중심”, “공동체성”, “지속가능성”을 핵심 원리로 하는 신도시주의(New Urbanism)의 개념을 토대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필요하다. 이는 대규모 개발 위주의 도시정비에서 벗어나, 소규모 필지 단위의 ‘옛동네형’ 정비를 통한 미시적이고 인간적인 도시정비 방식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재편을 넘어 사람과 장소의 관계를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도시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심도 있는 담론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서원석 / wseo@cau.ac.kr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한국도시계획가협회 상임이사, 도시주거환경전문위원회 위원장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지역경제학회 서울지회장(부회장), 경기도 도시재생위원회 위원, 한국토지주택공사 경영투자심사위원회 위원,
한국지역개발학회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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